문종묘와 삼봉정
문종묘와 삼봉정은 소흥시내 와룡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문종은 월왕의 모사이며 범려와 함께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나라를 멸한 후 문종은 자신의 공이 높다고 믿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구천에게 속루검을 하사받고 스스로 목을 베었다. 구천은 문종을 월국의 도성 서쪽 산에 장례를 치르게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산을 종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문종묘는 1938년에 재건된 것이고 후에 묘소 근처에 삼봉정이 세워졌다.
당초 오나라의 대부 오자서가 월왕 구천의 투항을 반대하고 죽여야 한다고 고집하였다. 후에 오자서에게 속루보검을 하사하여 자결하게 하였다. 오자서가 죽은 후 오왕은 말가죽으로 그의 시체를 싸서 강에 버리라고 명하였다.
월나라의 부흥은 범려와 문종의 지략 덕분이었으며 특히 문정의 오를 멸할 아홉가지 계책에 의해 이루어졌다. 구천은 오를 멸하고 속루검을 손에 넣은 후 갖은 구실을 찾아 문종에게 속루검을 하사하여 자결하게 하였다. 문종이 죽은 후 구천은 와룡산에 후하게 장례를 치르게 하였는데 그렇게 하여 와룡산에 종산이라는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오자서는 생전에 항상 문종을 증오하여 계속 복수하려고 하였다. 문종이 죽은 그해 큰 홍수가 나 문종의 유골을 쓸어 가버렸다. 오직 문종과 오자서가 파도 위에서 열렬히 논쟁하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논쟁하던 끝에 오자서가 문종도 속루검에 죽게 된것을 알고 두 사람 모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화해하였다.
문종은 생전에 성품이 온화하였기에 그에게 조수의 관리를 맡겼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문종을 조수의 신으로 부르게 되었다.
월절서에 의하면 문종이 죽기전에 말하길 “후세에 현자가 백 년에 하나 나오는데 나를 삼봉에 안장하면자연스럽게 후대에 인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