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臥龍山)의 전설
와룡산(臥龍山)은 지금의 소흥에 있는 푸산(府山)을 말한다. 소흥시 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은 감호를 끼고 있다. 해발고도는 74미터이며, 성내의 지산(蕺山)과 탑산(塔山)이 우뚝 솟아있다. 면적은 22헥타르, 동서남북으로 330묘에 이른다. 와룡산이라는 이름은 산줄기의 굴곡이심하고, 그 형상이 마치 누워 있는 용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송나라 시대 와룡산에는 모두 72일흔 두곳의 누대와 정각이 있었다. 현재 월왕대(越王臺), 월왕전(越王殿), 남송(南宋)의 측백나무, 청백천(淸白泉), 비익루(飛翼樓), 풍우정(風雨亭), 문종묘(文種墓), 벚꽃공원, 마애석각(摩崖石刻), 용추(龍湫), 열사 묘역, 분재공원 등 10여곳의 주요 관광지가 있다.
오래전에 와룡산은 하나의 모래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이곳에 정착하여 평온하게 살고있었다. 그 곳에 팡씨 성을 가진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의 아들 웅백(雄白)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글과 도리에 밝고 무예에도 능하였다. 어느 날, 그가 검 연습할 때, 대나무 숲 속에서 푸른 눈의 두 노인이 '복수' 와 관련해 은밀히 논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천년 전에용왕이 풍랑과 홍수를 일으켰는데 후에 우(禹)임금이 홍수를 막고 용왕을 격퇴시켰다. 우임금이 죽은 후, 용왕은 용담으로 비밀리에 돌아가 수련하였다. 현재 수련을 마치고 회계산(會稽山)을 수몰 시키고, 대우릉(大禹陵)을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웅백이 용왕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웅백은 용궁에 들어가 용왕이 방심한 틈을 타서 여의주를 훔쳐 품속에 숨겼다. 놀랍게도 갑자기 몸집이 커지고 힘이 배가되었다. 그는 곧바로 용의 등에 올라타 검으로 용의 부리를 찢고, 용의 배를 찌르고, 용의 꼬리를 잘랐다. 용왕은 여의주를 되찾으려고 몸부림쳤는데, 웅백은 온 힘을다해 용왕을 끌어안고 함께 죽었다. 그렇게 죽은 웅백의 거대한 몸집이 끝없이 이어진 산맥이되었다.
웅백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와룡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여의주가떨어진 그 곳을 화주산(火珠山), 용의 꼬리가 떨어진 곳을 용미산(龍尾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와룡산과 용미산 사이에는 포룡산(抱龍山)이라 불리는 불룩한 작은 봉우리가 있다.